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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상황극 해달라" 어이없는 랜덤 채팅이 실제 성범죄로

정말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한 랜덤 채팅 애플리케이션()에서 성폭행 당하고 싶다는 말을 믿은 남성이 실제로 한 여성의 집에 들어가 실제로 성폭행을 저지른 사건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처음 '성폭행 당하고 싶다'며 말을 건넨 사람은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습니다. 이 남성의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 성폭행의 발단이 된 거죠.    
 
지난해 8월 세종시의 주택가에서 발생한 일인데요. 20대 후반의 남성 A씨는 불특정 다수와 무작위로 연결되는 일명 랜덤채팅 앱에서 '35세 여성'으로 자신의 신분을 가장했습니다. A씨는 "성폭행 당하고 싶은데 만나서 상황극 할 남성을 찾는다"며 다른 남성들의 접근을 유도했습니다.
 
30대 중반 남성 B씨는 이 말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A씨는 B씨에게 자신이 사는 곳이라며 거주지 인근의 주소를 하나 알려줬습니다. 실제로는 모르는 여성의 집이었죠. B씨는 A씨가 알려준 주소를 찾아가 원룸 안에 머물던 한 여성을 성폭행했습니다.
 
신고를 받은 수사기관은 A씨와 B씨를 모두 찾아냈습니다. 피해 여성과 이들 두 남성은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였습니다. 랜덤채팅이 성범죄로 이어진 겁니다.
 
검찰은 A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주거침입강간 교사 등 혐의로, B씨를 같은 법상 주거침입강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특수강도강간 등) ① 「형법」 제319조제1항(주거침입), 제330조(야간주거침입절도), 제331조(특수절도) 또는 제342조(미수범. 다만, 제330조 및 제331조의 미수범으로 한정한다)의 죄를 범한 사람이 같은 법 제297조(강간), 제297조의2(유사강간), 제298조(강제추행) 및 제299조(준강간, 준강제추행)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이들이 조사를 받으면서 했다는 말이 더 기가 막히는데요. 이 사건을 시작한 A씨는 상대방 즉 B씨를 골탕 먹이려 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말을 끝까지 믿고 실제 성폭행을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건데요.  
 
반대로 B씨는 A씨에게 자신이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입장입니다. B씨는 몇차례나 확인했지만 A씨가 계속 성폭행 상황을 유도했고 자신은 그 말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둘 다 성범죄 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A씨에겐 성폭행 교사죄 인정 될 듯 
 
여기서 문제되는 부분은 A씨에게 주거침입강간의 교사죄가 적용될 수 있는가입니다. 교사죄는 누군가에게 범행을 저지르라고 지시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자신이 직접 범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범죄를 저지르게 한다면 실제 범죄를 실행한 사람과 똑같이 처벌받게 됩니다.   

형법

제31조(교사범) ①타인을 교사하여 죄를 범하게 한 자는 죄를 실행한 자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한다.
②교사를 받은 자가 범죄의 실행을 승낙하고 실행의 착수에 이르지 아니한 때에는 교사자와 피교사자를 음모 또는 예비에 준하여 처벌한다.
③교사를 받은 자가 범죄의 실행을 승낙하지 아니한 때에도 교사자에 대하여는 전항과 같다.

교사죄와 관련해 법원은 타인에게 특정 범죄를 실행할 결의를 가지게 하는 것을 말한다는 입장입니다. 교사행위는 타인에게 특정 범죄를 실행할 결의를 생기게 하는데 적합한 행위라면 그 수단, 방법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는 것이 법원의 태도입니다. 명령, 지시, 위협, 기망, 감언, 유혹, 종용, 애원, 이익의 제공 등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죠.
 
랜덤채팅에서 A씨가 한 말이 B씨로 하여금 성폭행을 하게 만들었는데요. A씨의 말이 없었더라면 B씨는 성폭행을 하지 않았겠죠. A씨의 말이 B씨로 하여금 성폭행이라는 범죄를 실행할 결의를 가지게 했다고 보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A씨는 자신은 그럴 줄 몰랐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주소를 알려주고 성폭행을 하라고 말했다면 교사범으로서의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B씨 '고의 없는 도구' 주장…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 높아  
 
성폭행을 실제로 실행에 옮긴 B씨는 어떻게 될까요?

B씨는 범죄에 대한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정말 상황극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성폭행 의사는 없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고의가 없이 한 행위로 범죄가 아니라는 주장이 될텐데요.
 
흔히 '고의 없는 도구'라고 말하는 경우인데요. 한 의사가 환자에게 독약을 처방하고 간호사가 그 독약을 주사했습니다. 간호사는 독약인지 모르고 주사했지만 결국 환자는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의사는 살인죄의 교사범으로 처벌되지만 간호사는 처벌되지 않습니다. 살인의 고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A씨가 어떻게 B씨를 확신하게 만들었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데요. 하지만 B씨가 범죄 행위를 먼저 해달라는 A씨의 꾸며낸 말만 믿고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피해여성이 자신과 채팅을 한 여성이 맞는지를 확인했어야 하는데 사건의 과정을 볼 때 그러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 성폭행 상황극은 A씨가 먼저 제안했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 말만을 믿고 피해 여성의 저항을 뚫고 범죄행위를 끝까지 실행에 옮긴 점은 분명 책임을 물을 수 있어 보입니다.

아무리 상황극을 주문받았다 하더라고 실제 거절과 저항의 태도에서 실제인지 아닌지 충분히 구분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범죄의 고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랜덤채팅의 대화 내용, 실제로 해당 집에 침입해 성폭행하는 과정, 피해자의 진술 등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합니다. 정말 B씨가 A씨의 말에 속아서 고의 없이 행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재판 과정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질 부분입니다.
 
서로 모르는 남성끼리의 어이없는 대화가 엉뚱한 여성을 성폭행 범죄의 피해자로 만든 셈인데요. 충분한 조사를 통해 범죄자들에게 응분의 처벌이 내려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