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집에서 사용하는 인터넷의 속도가 불만족스럽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통신사에 문의해보니 속도를 올리려면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연히 휴대폰으로 와이파이 설정을 살펴보는데 우리집뿐 아니라 이웃집 서너곳도 접속 가능한 네트워크로 잡힙니다.
A씨는 별 생각 없이 이웃집 B씨의 와이파이에 접속했는데 비밀번호 설정이 없어 바로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속도도 이전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무언가 찜찜하긴 했지만 시원스런 인터넷 속도에 A씨는 수개월간이나 B씨의 와이파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B씨는 A씨가 자신의 와이파이를 무단 접속해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아챕니다.
A씨로부터 사과를 받았지만 B씨는 좀처럼 분이 풀리지 않습니다. 문득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A씨에게 통신비 사용을 청구하거나 법적 대응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집 와이파이에 수없이 접속해 몰래 마음대로 편의를 누린 이웃집 사람들에겐 어떤 법적 책임이 따를까요? 네이버 법률이 살펴봤습니다.
/사진=pixabay
결론부터 말하면 별다른 법적 책임을 묻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훔쳐 사용했으니 형법상 절도죄를 생각할 수 있으나 무리로 보입니다.
형법상 절도죄는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에게 인정됩니다. 대법원은 '절취'를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재물을 점유자의 의사에 반해 그 점유를 배제하고 자기 또는 제3자의 점유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합니다.
와이파이의 경우 타인이 점유한 재물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그 점유를 배제하고 자기의 점유로 옮긴 절취행위라고 해석할 수도 없어 보입니다. A씨가 사용한다 해도 B씨 역시 와이파이를 계속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불법 해킹 등으로 보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해킹의 경우 관리자의 허락없이 서버 등 시스템에 접속해 정보를 파괴 또는 변경 시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에 해당하죠. 하지만 와이파이는 이 같은 경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재산상 피해는 어떨까요? 이 역시 발생했다고 볼 여지가 없습니다. A씨가 몰래 사용해 사용량이 늘었고 그 때문에 B씨의 통신사용료가 더 청구됐다면 재산상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국내 가정용 인터넷은 사용량에 제한이 없습니다. A씨가 사용했다고 해서 B씨에게 추가 비용이 청구되는 것은 아닙니다.
A씨의 인터넷 속도가 느려졌다면 어떨까요? 정신적 피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 역시 구체적인 피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A씨의 동시접속으로 인터넷을 아예 사용할 수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인터넷이 좀 느려지기만 했다면 그 피해를 주장하기가 애매합니다.
무엇보다 피해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B씨 스스로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지 구체적으로 입증해내야 하는데요. 이를 입증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따져보면 소송을 제기해 이긴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B씨가 비밀번호 설정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 주목할 수도 있어 보이는데요. 다른 사람도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볼 수 있다는 해석이 차라리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가정용 와이파이를 사용하는 가구가 늘어나면서 종종 생기는 갈등인데요. 법을 따지기보단 각 가정이 와이파이 암호를 잘 관리하고 설령 암호 설정이 없는 와이파이라고 하더라도 사용하지 않는 에티켓을 통해 해결하는 방향이 더 바람직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