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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 페인트로 '임원 비방'…재물손괴죄인가

/사진=게티이미지

노조원들이 도로 바닥에 페인트로 경영진들을 비난하는 내용을 적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재물손괴죄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어떤 내용일까요.
 
대법원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집단·흉기 등 재물손괴 및 모욕 혐의로 기소된 A씨 등에게 벌금 200~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지난 13일 밝혔습니다.
 
모 기업 소속 직원인 A씨 등은 2014 10월 사측이 부당노동행위를 한다고 주장하면서 쟁의행위를 벌였습니다. 그러면서 회사 임원들에 대해 욕설 등 모욕적인 내용이 담긴 내용을 흰 천에 페인트 등으로 쓰고 해당 내용이 공장 근처 회사 소유 도로에 배이게 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이를 원상복구 시키는 데는 약 90만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검찰은 이들에게 재물손괴죄와 모욕죄를 함께 적용해 기소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형법
제366조(재물손괴등) 타인의 재물, 문서 또는 전자기록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 또는 은닉 기타 방법으로 기 효용을 해한 자는 3년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11조(모욕)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도로에 낙서를 한 것을 가지고 도로가 갖고 있는 본래의 효용을 해쳤다고 볼 수 있을까요. 도로는 사람들이 통행을 하기 위한 것인데, 낙서를 했다고 도로 자체를 지나다닐 수 없는 것은 아니기에 이 부분이 쟁점이 됐습니다.
 
하급심 법원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재물손괴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1, 2심 법원은 "도로에 낙서를 한 행위만으로는 도로를 통행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해당 도로는 회사 정문 입구에 있어 미적인 효용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바로 문제가 됐던 도로의 위치에 주목한 건데요. 하급심 법원에선 이 도로가 회사의 정문 입구로 연결되는 도로이기에 회사에 대한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물리적으로 지나갈 수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쾌적한 근로환경을 유지할 수 있도록 깨끗하게 도로가 유지되는 것 역시 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겁니다.
 
하지만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유지되지 못하고 파기됐습니다. 대법원은 문제가 된 노조원들의 행위에 대해 재물손괴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유색 페인트와 래커 스프레이를 이용해 회사 소유 도로 바닥에 직접 문구를 기재하거나 도로 위 현수막 천에 문구를 기재한 행위는 도로의 효용을 해하는 정도에 이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 "산업현장에 위치한 이 도로의 주된 용도와 기능은 사람과 자동차 등이 통행하는 데 있고, 미관은 그다지 중요한 작용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하급심 법원의 판단을 뒤집은 거죠.
 
대법원은 도로의 효용은 통행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도로 바닥에 문구 등을 적었다고 해도 이 때문에 통행이 불가능하게 된 것은 아니기에 이에 대해 재물손괴죄를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이어 "도로 바닥에 낙서를 하는 행위 등이 도로의 효용을 해하는 것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도로의 용도와 기능 도로의 안전표지인 노면표시 기능 및 이용자들의 통행과 안전에 미치는 영향 도로의 미관을 해치는 정도 도로의 이용자들이 느끼는 불쾌감이나 저항감 원상회복의 난이도와 거기에 드는 비용 그 행위의 목적과 시간적 계속성 행위 당시의 상황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모욕죄는 어떻게 판단됐을까요? 회사 임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정신차려라, 성실교섭 이행하라 등의 문구가 포함됐었는데요. 직접적인 욕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하급심 법원은 직접적인 욕들에 대해서는 모욕죄를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 정신차려라등의 표현에 대해서는 무례한 표현이긴 하지만 이것이 모욕죄에 해당될 만큼은 아니라면서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대법원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대로 하급심의 판단을 인정했습니다.